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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Z 이야기

NetZ 이야기 – 7. 사업화 그리고 벤처

by 글쓰는 프로그래머 2010. 11. 7.

사업화 그리고 벤처


3월6일, 첫 출근을 했다. 지난 번 회사에 대한 인상이 워낙 그래서 그런지 훨씬 안정적이고 체계가 잡혀 보였다. 첫날 저녁에 6시 30분엔가 상무님이 자리에 와서

"이채성씨,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그럼 왜 아직 퇴근 안 해요?"

직장 생활 4년 만에 6시30분에 퇴근 안 하냐고 물어봐 준 분은 처음이었다. 그래 이런 회사를 다녀야 해…… ㅎㅎ 입사 후 며칠 동안 업무 인수인계 하느라고 왔다 분주했다.

NetZ에 본격적으로 손을 댈 수 여유도 찾았다. 프로그램이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어 가니 예전만큼 기능추가를 하는 데 빨리빨리 하지 못했다. 이걸 하면 저게 문제였고, 저걸 하면 이게 문제였다. 고민해야 하는 게 점점 늘어갔다. 꾸준히 메일도 왔다. 이걸 고쳐줬으면 좋겠다. 저걸 고쳐줬으면 좋겠다. 그게 점점 쌓였다.

1월부터 후배 두 명- 중현이랑, 성범이 -과 NetZ의 사업화에 대한 얘기를 조금 했었는데, 두 명 모두 사업화에 대해서 함께 참여하겠다고 했다. 내가 좀더 경험이 있었다면, 다른 모습으로 일이 진척되었을 텐데, 나를 포함해 세 사람 모두 개발이라면 잘 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사업화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고 있었다. 프로그램 소스라도 함께 나눠서 개발이라도 같이 하려고 했었는 데 막상 그마저도 하질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중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중현이의 친척형이 한번 보고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에 중현이 친척 형 - 지섭이 형 - 이란 분과 만났다. 대학교 전산과 교수라고 하는 데 본인의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화 할건데 함께 사업을 하자는 얘기였다. 내 입장으로서야 당연히 OK였다. 함께 일하고자 해도 공간도 없었고, 함께 어떻게 시작할 지도 감을 못 잡아 지지부지 하던 차에 대학교수라는 분이 사업화를 함께 하자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섭이 형 아이템의 지분을 50%, NetZ에 대한 지분율을 50%로 해서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NetZ에 대한 지분율 중 내가30%, 그리고 후배들이 10%씩 해서 20%를 채웠다. 당연히 그쪽 아이템은 지섭이 형과 그 동생분, 그리고 지섭이 형 아버님이 50%를 채웠다.

4월 초에 특허청 근처의 벤처타운에 입주했다. 새로운 공간. NetZ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함께 개발할 수 있는 공간. 저녁 늦게 벤처타운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땐 정말 설레임으로 가득 했다. 생각보단 공간이 협소했지만 몇 안 되는 우리가 일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주중에는 다들 본업을 해야 했으므로 주말에 모여 일을 하기로 했다. 지섭이 형 아버님께서 사장님을 하시고 이런 저런 행정절차를 밟아서 해서 주식회사로 등록도 했다.

이즈음 유지보수 프로젝트로 파견을 갔다. 낮엔 전화 받고 저녁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공공기관이었는 데, 시스템이 전국을 커버하다 보니 별별 전화가 다 오고, 처음 한 달은 정말 고생했다. 업무도 잘 모르는 데다가 사수란 분은 갑자기 미국 출장을 1주일이나 가버리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사수 없으니까 전화는 왜 그렇게 폭주하는 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5월 중순쯤에 예전에 A정보시스템의 사장님에게 내 프로그램을 소개시켜 줬던 김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산의 우리팀으로 전화를 해서 어렵사리 내 연락처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한 번 보고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사당역 근처 피자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무슨 일일까? 다시 A정보에서 오라는 얘길까? 궁금함에 서둘러 전철을 탔다.

나한테만 보냈던 건 아니었지만 3월 중순쯤엔 A정보시스템에서 다시 돌아와서 일할 수는 없겠냐는 편지가 도착도 했었다. 벤처붐에, 그룹사도 어려웠고 했던 탓에 사람이 많이 빠졌었나 보다. 하긴 인사팀이 모두 퇴사하는 바람에 퇴직서류 꾸며줄 사람이 없어서 1개월간 퇴직을 못했던 사람도 봤으니까 ㅎㅎ.

어찌 지내냐? 옮긴 회사는 어떠냐? 이채성씨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서 참 안타깝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끝에 만나자고 한 본론을 들으니 아바타 사업을 할 건데 함께 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업에 참여할 사람들에 대한 프로필을 보여 주었는 데, 모 증권사 아날리스트, 대학교수, 그리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말 꽤 괜찮은 사람들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용자가 본인 사진을 등록하면, 커리컬쳐화 해서 아바타 그림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였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난 이렇게 만들어진 그림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2년 후에 전국은 아바타 열풍 ㅋㅋ

"제가 해야 하는 롤은 뭔가요?"

"대학원 연구방에서 엔진을 개발해서 주면 그걸 상용화하는 것을 전업으로 맡아주시면 되요"

"그래요? 누구랑 함께 일하면 되나요?"

"당분간은 혼자서 일하시게 될 거예요"

"예… 사업에 참여하시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참여하시는 건데요?"

"다른 분들은 다들 본인들 직업이 있어서요. 직접적으로는 참여치 못하실 거예요"

"김대리님은요?"

"저는 회사도 다녀야 하고, 저녁이면 대학원에 가야 해요"

다른 사람들은 직업이 있으니까 파트타임으로 참여하고, 대학원 연구실에서 샘플처럼 나올 소스를 받아서 내가 Full Time Job으로 상용화 하고 그 대신 내게 사업의 일부 지분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상용화해서 사업화가 되어 매출이 일어날 때 까지 저는 뭘 먹고 사나요? ㅎㅎ"

"사업이니까요. 그때까지는 투자라고 생각하고 일해 주실 수는 없나요?"

"다른 분들의 직장은 소중하고 제가 당장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직장은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

좋은 낯으로 헤어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피자를 평소에 좋아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겨우 반 조각 먹고서 헤어졌다. 자기들은 한쪽 다리만 살짝 걸치고 있다가 사업화가 성공하게 되면 그 과실을 나누겠다는 것인데. 그 와중에 뼈빠지게 고생해야 하는 건 나밖에 없는 거 같았다. 연구실에서 나오는 소스 코드. 물론 그게 무슨 무슨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어렵긴 하지. 하지만 그걸 상용화하는 것 또한 수많은 예외사항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고 연구소에서 만들어 내는 거 못잖게 상용화하는 것도 쉽잖은 것이다. 그걸 나한테 내 직장 그만두고 Full Time으로 해달라는 것. 그건 아닌 거 같았다.

그 후로 연락이 되지 않았으니 그게 정말 상용화가 되어 사업이 번창했는 지는 모르겠다. 아바타가 한참 유행했으니 그에 편승해서 한 몫 잡았는지도, 아니면 그냥 말만 무성하다가 그만 뒀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이면 정기적으로 역삼동 벤처 사무실에 모여서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NetZ"라는 프로그램명이 사용자에게 뭘 하는 프로그램인지를 명확히 알리지 못한다는 의견에 따라 "InfoStick"이라고 개명도 했다. "NetZ"라는 프로그램명은 network 세계의 Α-Ω 에서 Ω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NetZ라고 이름 지었다. 아무도 그리 공감해 주지는 않았지만 ㅎㅎ.

모여서 NetZ를 어떻게 사업화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곤 했지만,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개발해나갈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안했다. 이상하게도 – 그랬다. 난 그 때,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 – 아무도 NetZ라는 프로그램의 기능이라던지 구조라던지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매뉴얼이 충실해서 그런가? 사실 매뉴얼에 담지 못했던 기능들도 꽤 있었는데 아무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어떻게 포장을 잘해서 투자자들한테 Funding을 받을 지에 대해서만 서로 얘기했다. 처음에 이런 분위기는 내게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는 데, 종래 나의 사업에 대한 생각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를 함으로써 매출을 일으키고 이익을 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했는 데 사업계획서를 잘 써서 투자자들한테 펀딩을 받고 그 자금을 통해서 돈을 벌고, 또 다른 사업을 벌이는 것이 마치 벤처시대 사업화의 정석인 양 얘기되고 있었다. 하긴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제품에 "인터넷" 세 글자를 달고 60억을 투자받는 것도 보았다. 정말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다.

집단 최면.

가끔 우리는 집단최면에 걸리는 데, 사실 이때도 우리가 집단최면에 걸렸던 게 아닌가 싶다. 벤처라는 이름 하나에, 또 "인터넷"이란 이름이 붙은 사업이라면 돈이 몰리던 시기였다. 눈 먼 돈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다들 그 눈먼 돈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사업기획서를 써 주고, Funding을 받으면 성공보수를 받는 직업이 있었다.

그 집단최면의 기운이 벤처 사무실내에 만연해 있었다. 열심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능을 추가하고 개선하는 것은 무척이나 하급 기술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그러한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아닌 거 같았는데, 다들 어떻게 포장을 해서 펀딩을 받을 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느 순간 나도 거기에 편승해 있었다.

근데 문제는, 벤처사무실에 입주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야 할 때도, 내가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알기 때문에 내가 써야 했다. 다들 이런 저런 훈수만 두었지 막상 써야하는 문서는 내가 새벽 3~4시까지 써야 했다. 가끔 메신저로 잘 쓰고 있냐는 안부만 전해졌다. 메일을 통해서 들어오는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회신을 써야 했다. 사무실에서 프로그램의 기능추가에 대한 제안도 있었는 데 이것도 프로그램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수정하고 개발해야 했다.

이건 아닌 거 같아서 하루는 후배 중 한 명에게 프로그램 소스를 좀 나눠서 같이 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냈다.

"프로그램을 뭘 나눠서 개발하려고 해요? 그거 개발해서 통합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텐데요. 그리고 요즘 회사 바빠서 함께 개발할 시간도 없어요"

섭섭했다. 무척이나 섭섭했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섭섭했다. 함께 사업화를 하는 것이란 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섭이 형이 추진한다던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 들은 것도 함께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였는 데, 처음엔 보안이라고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지섭이 형이 추진하던 아이템은 "한글 이메일 주소"였다. 그러니까 "이채성@naver" 이렇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 데 특허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글쎄? 이게 E-Mail에 대한 규약인데 – 메일 주소는 7bit로 쓰게 되어 있다 – 특허로 출원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교수가 하는 거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겠냐고 생각 했다. 본인 대학원방 학생들이 한글 메일 주소 구현을 위해서 열심히 sendmail 소스를 분석해서 수정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는 함께 하는 아이템인데 우리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sendmail 소스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아직은 보여주기가 어려워. 그리고 상용화를 위해서 해결 해야할 작은 문제도 있고"

"뭔데요?"

"다른 건 아니고, 한글 이메일 아이디가 되려면 우선 MS의 Outlook 프로그램이 지원을 해야 하는 데, Outlook프로그램에서 한글 메일 주소를 치면 오류처리를 해. 이건 내가 MS사와 협의를 해서 고칠 거야"

굉장히 호기롭게 얘기를 해서 금방이라도 협의만 하면 다음 버전에선 수정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한글 이메일 주소 사업은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 데 우선은, 호기롭게 얘기했던 MS와의 협의가 그렇게 쉬울 것인가 하는 거였고-현재는 Outlook에서 한글 이메일 주소를 지원한다고 한다.- 메일이라는 게 서버간의 통신이라서 우리쪽 서버가 한글메일 아이디를 지원한다고 해도 상대방 서버가 지원하지 않으면 통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글 메일 아이디가 정상적으로 운용되려면 적어도 우리나라의 모든 서버가 한글 메일 아이디를 지원해야 한다. 사업화에도 다소 문제가 있는 데 sendmail서버가 오픈소스로 운용되는 데 여기에 한글 메일 아이디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개발한다고 해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한글 이메일 주소 사업에 대해서 추진방향 등에 함께 논의하고자 하였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저 복잡한 프로그램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라는 말만 들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다.

개발하는 것도 지지부지 했고 사업화하는 것도 지지 부지 했다. 옆에서 훈수 둘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그걸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용자 수도 점점 줄기 시작했다. 유사한 프로그램도 하나 둘씩 생겼다. 어떤 프로그램은 정말 NetZ와 똑 같은 형태로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 디자인도 이쁘게 하고, 증권정보, 기상정보 등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루는 지섭이 형이 전업으로 사업화에 뛰어들지 않겠냐는 얘기를 꺼냈다. 누구 하나 전담으로 하지 못하니까 사업화가 어려운 거 아니냐는 얘기였다.

'형이 대학교수 자리 그만 두고 하실 의향은 없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그래 봤자 상상하는 거 이상의 답변을 못 들을 거 같았다.

NetZ를 이렇게 사업화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A정보시스템이랑 사업화 때문에 실랑이를 시작했던 것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후배들이랑 사업을 같이하자고 얘기를 꺼내서 일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전이나 그 후나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자신감. 용기?

만약 내가 내 프로그램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면, 내게 몇 년간 아무런 소득 없이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었다면, 혹은 아예 잃을 것이 전혀 없는 상태라 NetZ라는 프로그램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면 아마 다른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자신감도, 돈도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작은 프로그램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걸기에는, 작지만 매달 꾸준히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있었고, 그 월급으로 먹여 살려야 하는 부양가족이 있었다.

사업이라는 건 누구 하나 전업으로 하지 않고, 지금처럼 잘되면 좋고, 잘 안되어도 별로 손해 볼게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그해 겨울, 사업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진전없이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같았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혼자서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하면서, 그냥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만들면서 주식대금으로 내었던 돈을 지섭이 형이 주식을 인수하는 형태로 해서 돈을 받았다. 사무실 열쇠를 꼭 돌려 달라고 했는 데 잊고서 못 가져 갔더니 들었던 얘기

"보안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중현이를 통해서 사무실 열쇠를 꼭 반납토록 해"

중현이를 통해서 열쇠를 돌려 주었다. ㅎㅎ

우리 사업의 파트너 아이템이었던 "한글 이메일 주소"프로그램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주주 중의 한 분이라는 지섭이 형의 동생분 – 지분율이 15%였나? -도 한번 뵙지 못하고서 짧은 벤처 아닌 벤처의 시간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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