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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Z 이야기

NetZ 이야기 – 4. 사장님 보고

by 글쓰는 프로그래머 2010. 11. 7.

사장님 보고


추석을 보내고 10월이 되었다.

프로젝트가 이제 막바지였다. 팀 별로 배부된 경비금액이 안 맞아서 끝까지 고생을 했다. DW에 대한 기술지원을 하러 왔던 강대리가

"Dataware-Housing에 ing가 괜히 붙는 게 아녜요. 끝이 없거든요."

정말 끝까지 데이터 크린징 때문에 고생을 해야 했다. 내 다시는 DW 프로젝트 하나 봐라. 데이터 ETT툴에다가 썼다.

'제발 다시는 DW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않게 해 주세요.'

그 와중에 사장 보고자료, 본부장 보고자료, 기획팀장 보고자료, 비슷비슷한 내용을 늘였다가 줄였다가 하면서 별별 문서를 다 만들었다.

10월 중순경에 팀장한테 프로젝트 때문에 보고를 하러 갔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팀장이 고객사 기획팀장이 불러서 내려가는 바람에 팀장 책상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프린트물이 있었는데 서울의 기획팀 대리가 기획팀장한테 메일을 보내며 팀장을 참조로 해서 보낸 메일이었다.

"NetZ를 사업화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은 해 줘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무쪽의 의견도 그렇고 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닌 관계로 저작권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해 줘야 하는가 하는 게 문제인데……"

8월 NetZ에 대한 프로그램 소스를 달라고 할 때부터 변리사 홈페이지며, 법률구조공단 사이트를 한참이나 뒤져서 나와 비슷한 경우를 확인하였었다. 확인한 결과로는 회사에서 프로그램의 개발을 지시하였거나 하지 않으면 저작권은 회사가 아닌, 개발자가 갖는다는 취지였다. 이것을 찾으려고 며칠을 뒤져야 했다.

아무런 소식 없이 있는 동안에 기획팀에서 법무팀에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서, 내게서 내 프로그램을 그냥 가져가는 방법에 대해서 궁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내가 이런 회사를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프로그램에 대해서 돈은 주려나?

[NetZ 홈페이지(1999) 지금 보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디자인이었다 ㅎㅎ]

10월 19일 심사가 완료가 되는 날이었다. 이제나저제나 기획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뭘 하는지 도대체 연락이 오지 않았다.

10월 21일 기다리다 못해 기획팀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전화를 했다.

"글쎄요? 보통은 메일로 연락이 오는 데 연락이 없는 걸 봐서는……"

사업계획서를 쓸 때는 이 문서 만들어라, 저 문서 만들어라 그렇게 말이 많더니 굉장히 무관심하게 얘길 했다. 심사에 떨어졌다는 말인지? 궁금함에 정보통신진흥원에 직접 전화를 했다.

"저 A정보시스템에서 제출한 사업에 대한 심사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만……"

"잠시만요, A정보시스템의 Internet Messaging Platform개발사업은 심사에 통과했구요. 결과는 이미 통보가 되었는 데 연락을 못 받으셨나 보죠?"

"아 예……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서요. 감사합니다."

그 순간 기획팀에서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글쎄? 별별 생각을 다했다. 심사에 통과했다는 사실에 기쁘기 보다는 기획팀에 대한 의구심으로 마음이 심란했다.

그 후로 하루인가? 이틀이 지나서 서울에 기획팀에서 전화가 왔다. 사내 벤처 1호로 사업을 만들고자 하는데 함께 사업화에 대해서 의논하자는 내용이었다.

사내 벤처라는 게 회자되던 시기였다. 회사 내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서 사업화하는 것이었는데 NHN같은 경우도 대기업의 사내 벤처중의 하나였다.

부산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5시간여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냥 AutoAuto 그 프로그램으로 해외 여행이나 보내주는 것으로 끝났으면 편했을 텐데. 팀 내에서도 그렇고, 팀장님한테도 미안하고, 이게 뭔 짓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해서 좋았는데 이런 저런 일로 엮이다 보니 정말 맘이 심란해 졌다.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 그건 제 프로그램이 아니고, 아는 지인의 것이다라고 했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 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을 갓 넘긴 시간이었다. 어차피 2시경에 보자고 했으니 서울역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서 기획팀으로 갔다.

"아~ 오셨어요? 잠시만요. 팀장님께서 바쁘셔서요. 잠시 기다리셔야 할 거 같아요. 혹시 서팀장님 뵈셨어요? 사내벤처팀 팀장님이세요. 앞으로는 서 부장님이랑 말씀 더 많이 나누시게 될 거 같아요"

내 프로그램에 대한 사업 건을 계기로 사내벤처팀이란 게 생겼나 본데, 그 팀의 팀장께 데려다 줬다. 자리로 갔더니 팀원과 면담을 하고 있었는 데 게임사업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사시면서 오락실 게임 한번 안 해보셨을 거 같은 분이 게임사업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면담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가 내 소개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줬다.

요즘에야 그런 분이 거의 없는데 그땐 처음 만나면, 고향이며, 나온 대학교며 그런 걸 여쭤 보는 분이 더러 있었는 데 이런 호구 조사 중에 대학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 선후배간이란 걸 알게 되니 대화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본격적인 얘기는 기획팀장 나오면 그때 나누고, 요즘 회사 일이 힘들지는 않니?"

"예…… 맨날 그렇죠 모"

"그래도 SM사업을 하기 때문에 SI사업보다는 훨씬 편해. SI 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한다니까"

"예, 저희도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저녁에 보통 11시에 퇴근하고 있습니다. 조금 일찍 9시쯤 집에 가는 날에는 팀장님께 허락받고 집에 가야 하고요. 서울에는 토요일에 쉬시는 가 봐요? ? 격주로 출근할 때 였다 ? 저희는 토요일에 5시30분까지 정상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격주 근무는 상상도 못 하구요. 지금 저는 SM업무를 함께 하면서 프로젝트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들 보다 편한 환경에서 근무하니까 NetZ같은 걸 개발할 수 있었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듯 한데 내가 근무하는 걸 얘기했더니 더 이상 얘길 하지 않았다.

"아참, 그런 그렇고 내가 잠시 일이 있어서, 이따가 기획팀장 시간될 때 같이 만나지"

"예"

어디 앉아 있을 데도 없어서 비상계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30분쯤 지났을까? 김대리라는 분이 아는 척을 했다. 사장한테 내 프로그램을 처음 소개시킨 사람이라고 했다. 내 프로그램을 소개해 줘서 고맙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런 심란한 일이 생기고 해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들 똑같이 어렵게 일하는 데 NetZ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나에 비해서 본인은 뭘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10여분간의 대화가 끝나고 다시 비상계단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가끔 담배 피러 한두 사람이 오갔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DW작업했던 거 매출액이 잘 안 맞는 것도 생각나고, 빨리 가서 그거 고쳐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어차피 돈 안 줄 거 같은데, 괜한 욕심에 돈 달라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가을이라 날이 참 좋았다. 비상계단 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심란해 하면 날씨도 비가 오거나 하던데…… 실생활에선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ㅎㅎ

2시간여를 기다려 4시쯤 되니까, 그다지 바빠 보이지도 않던 기획팀장이 시간이 된다고 보자고 했다. 만나서의 대화는 아주 간단했다. 기획팀장, 나랑 맨날 얘기했던 박대리, 사내벤처팀장 이렇게 참석했는 데, '사내 벤처로 키우고 싶다. 사업화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 보자.' 뭐 그런 내용이었다. 돈 문제도 물어 봤었는 데 며칠 있다가 사장님 보고가 있을 건데 그때 사장님께 보고 드려서 얘기를 다시 하자는 내용이었다.

"정보화 촉진기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제가 확인해보니 심사는 통과했던데요"

박대리가 순간 당황해 했다.

"그 건은 사장님께 보고 드렸더니 굳이 나랏돈 빌리지 않고 회사 자금으로만 하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어요"

"예. 그랬군요"

나를 한참 동안이나 고생 시키더니, 포기했다고 하니 순간 맥이 빠졌다. 7억원 돈이다. 불과 1년전만 해도 그룹사에서 돈이 안 들어와서 회사 월급을 한달 못 주던 회사였는 데, 아무리 회사에서 운용하는 자금이 많다고 해도, 7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서 4~5년간 운용할 수 있는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빌려서 은행에다가 고스란히 넣어두고서 아무런 결과없이 5년 있다가 갚기만 해도 되는 돈이었다. 그걸 내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포기했다고 했다.

30여분간의 짧은 회의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 내려오니 애기를 안고서 와이프가 자고 있었다.

"왔어?"

"응"

"서울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어?"

"별루. 돈 안 줄 건가봐. 나중에 사장보고가 있을 건데 그때 얘기 다시 하재"

심란했다. 정말 심란했다. 회사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새근새근 대며 자고 있는 딸 아이를 바라 보자니 사업하다 실패하면 이제 갓 태어난 애기 우유값은 누가 대지?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마 결혼을 하지 않았었다면? 혹은 애기가 태어나지 않았었다면, 그때, 다른 결정을 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위해서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이 유난히 밝았던 기억이 난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사장님 보고가 있으니 서울로 올라오란 얘기였다. 드디어 사장님을 뵙는 구나. 사원이 사장님을 뵙고 직접 보고를 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사장님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나? 이런 저런 고민을 했다. 9월에 이미 사장님 보고용으로 만들었던 자료가 있었던 탓에 따로 준비는 필요치 않았다.

팀장과 함께 아침 일찍 서울로 갔다. 나 때문에 팀장님 번거롭게 해드리는 거 같아 죄송스러웠다.

기획팀 박대리랑 기획팀장 만나서 인사하고 곧장 회의실에 가게 되었다.

회의실로 가는 길에 팀장님께 여쭸다.

"사장님 보고할 때 돈 얘기를 해도 되나요?"

"잠시만요"

팀장님이 기획팀장과 잠시 말씀을 나누었다.

"이채성씨.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 기획팀장님이 돈 문제는 따로 사장님께 얘기하시겠다고 하네요"

"예"

해군 중령이셨다는 사장님을 뵈었다. 인사를 하고 사업 계획에 대해서 보고를 드렸다. 지금 보니 참으로 엉성한 보고서였는데 그 엉성한 보고서로 30여분 보고를 드렸다.

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개발해야 할 거, 프로그램이 갖는 그리고 가질 가치 등에 대해서 보고를 드렸던 거 같다. 어떻게 그 보고를 드렸는지 별 다른 기억이 없다. 사장님이 팀을 하나 만들어 팀장을 시켜 줄 테니 어서 서울에 와서 개발을 시작하란 말씀만 기억될 뿐이다.

보고가 끝나고 기획팀 분들이랑 다시 뵙자는 얘기만 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며칠 동안 기획팀에서의 연락만 기다렸다. 사장님한테 돈 문제를 보고 했는 지, 얼마나 돈은 주기로 했는지? 작은 금액일 망정 내가 1년 반 동안, 휴일이며 밤시간 동안 개발했던 것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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