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Z 이야기

NetZ 이야기 - 6. 파란만장했던 포탈 프로젝트

글쓰는 프로그래머 2010. 11. 7. 00:59

파란만장했던 포탈 프로젝트


며칠 쉬지도 못하고, 옷가지 몇 가지만 달랑 챙겨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가면 부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있을 거란 친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글쎄? 이렇게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 온갖 생각에 서울로 가는 5시간여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 다시 서울로 올라왔구나. 대학을 가려고 서울역 앞에 섰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서울역 앞에 서니 왠지 모를 두근거림에 가슴 벅찼다.

동생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우선 동생네 자취방에 기거하면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집을 구하게 되면 그때에 맞춰서 와이프랑 애기가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다.

12월6일. 첫 출근을 했다. 친구가 같은 팀에 있던 터라,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런 곳에서 갖는 낯섬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랑 옆에 붙어서 일하기 시작하려니,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하루 종일 피곤하였다. 저녁나절 본부장이 와서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하란 한마디 말에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딱 하루 본사에 앉혔다가 투입한다는 게 좀 그랬지만 여하튼 다음날부터 삼성동에 있는 있는 포탈 개발 프로젝트로 가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본사로 출근했다가 오후에 팀의 대리와 함께 삼성동에 있는 프로젝트로 갔다.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회의실을 프로젝트 룸을 쓰고 있었는 데 프로젝트 룸의 크기에 비해 프로젝트팀원은 PM이랑 허대리랑 딸랑 2명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하루종일 PC셋팅하고 – 아.. 이때 처음으로 21인치 모니터라는 걸 썼는데 CRT로 된 게 정말 무식하게 무거운 거였다. 마우스로 한참을 움직여도 아직도 중간이네 하는 느낌이었다.

둘째날인가? 셋째날인가? 저녁에 본사에서 팀회식을 한다고 해서 같은 팀의 디자이너 분이랑 본사로 출발을 했다. 회사얘기며, 팀 분위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삼성동 코엑스앞 횡단보도 앞에 섰다. 파란불이 켜지고 길을 건너는 데 갑자기 "끼이익~~~~"하는 자동차 브레이크음이 나면서 옆에서 얘기하던 디자이너 분이 갑자기 사라졌다. 저 멀리서 쿵하고 자동차 본넷을 치고 떨어졌다. 그때의 놀람이란…..

달려가니 디자이너는 차 앞에 쓰러져 있고, 지나가던 차에서 빨리 구급차에 전화를 걸란 소리가 들렸다. 119를 눌러야 하는 데 너무 놀라니까 제대로 숫자를 제대로 누르질 못했다.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 분이 내려서 119를 눌러줬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바로 옆에 있는 강남병원에서 엠블란스가 왔다. 엠블란스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새벽내내 병원을 지켰다.

내가 서울 왔다고 무슨 액땜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땐 너무 놀랐다.

12월 또 다른 사건도 있었는 데, 회사에 입사한다고 신체검사를 했더니 폐에 종양이 있다고 해서,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정말 나는 곧 죽는 줄 알았다. 얼마 되지도 않은 가산은 어떻게 정리할지, 이제 태어난 애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별별 고민을 다했다.

CT라는 걸 처음 찍었는 데, 찍기 전에 주사를, 정말 굵은 주사를 혈관에 찌르는 데, CT 기사가

"억, 여기가 아니네"

주사바늘을 쭉 뽑더니 다시 쿡 찌르는 데, 눈물이 찔끔 나왔다. ㅎㅎ

프로젝트가 어떤 건지도 모르고 12월이 지나갔다. 무슨 포탈을 만드는 것 같은 데 PM도 그렇고 고객사 쪽도 그렇고 뭘 만들어야 하는 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크리스마스를 동생 자취방에서 정말 우중충하게 보냈다.

2000년이 되었다. 새천년. 나도 30이 되었다. 서른 되는 아침이란 게 정말 묘했다. 갑자기 "서른 즈음에"라는 음악이 쏙쏙 들어오고. 난 20대에 뭘 했을까? 앞으로 내게 주어진 30대의 길은 어떤 것일까? 공자는 서른에 뜻을 세웠다는 데 난 무슨 뜻을 세워야 할까? ㅎㅎ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1월초에 뜬금없이 사업상 만나자는 메일이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썼었는 데 구체적인 것은 생각이 나지 않고 삼성동 주변 맥주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NetZ가 굉장히 훌륭한 프로그램이라 사업화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저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사업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파시지 않으시겠어요?"

"얼마에요?"

"3,000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쪽 사람이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 있도록 6개월 정도 함께 일한다는 조건이예요"

3,000을 줄 테니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넘기고, 6개월 동안 일해달라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월 500짜리 엔지니어로 쓰고 싶다는 얘긴데, 그 때 당시 자바 엔지니어가 굉장히 귀한 탓에 중급 엔지니어를 월에 700을 주고 프리랜서를 쓰던 시기였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굉장히 호의를 베푼다는 표정으로 얘기를 했는데, 앞에선 딱 잘라서 얘기를 하지 못하고,

"예……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1주일쯤 있다가 호의는 고맙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제의에 응하기가 어렵다고 메일을 썼다. 회신이 오기를

'너무 금액이 적어서 그런가요? ……'

답신도 하지 않았다. 내 프로그램 소스의 가치만으로도 3,000은 넘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거기에 덧붙여 6개월을 일해달라니. 재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1월 중순에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를 왔다. 한 달여를 못 보던 애기를 보니 너무 기뻤다. 주말이면 집 구하러 다닌다고 고생했는데 그것도 끝났다. 눈오는 날엔가 집을 보러 갔는 데, 구두 한쪽이 물이 새는 바람에 양말이 다 젖은 상태로 남의 집에 갔더니,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한쪽 발자국이 찍히는 걸 보고 얼마나 민망했던지 ㅎㅎ.

프로젝트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PM은 아직도 뭘 하는 건지 모르는 듯 했고, 고객사 PM이랑 맨날 술 먹는다고 바빴다. 고객사PM도 그렇고 우리 프로젝트 PM도 이 프로젝트 때문에 채용이 된 분들이었는 데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죽이 잘 맞는 거 같았다.

EJB도 이때 처음 써 봤는 데, 무슨 기능하나를 구현하려면 너무 복잡하게 여러 파일을 손대야 했다. 누가 이런 걸 개발했는 지. WAS벤더사에서 나온 사람이 조금만 익숙해 지면 얼마나 편한지 아실 거예요 라고 했는 데 개뿔. 뭐가 편해? 정말 Framework 뭐 그런거 하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면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1월말쯤에 회사에서 우리사주를 나눠 줐다. 99년 7월엔가 우리사주를 나눴다는 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나눠준다고 하니 원래 근무하던 직원들은 시큰둥했다.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허대리는 "인생 뭐 한방이지" 하면서 거액의 빚을 얻어서 우리사주를 샀는 데, 거기에 덩달아서 나도 내게 배정된 주식을 모두 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니 새벽녘까지 전투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3월초에 1차 오픈이 있었기 때문에 전투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PM이 꾸준히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했는 데, 1층에 있었던 고객사 사무실에 갔다가 오기만 하면 무슨 기능이 늘어나고, 마치 자판기에서 캔커피 나오는 걸 기다리듯, 개발자 옆에 붙어서 기능이 만들어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개발이 늦어지면 손도 막 올라왔는 데, 정말 치겠더만. ㅋㅋ

본인이 DB설계는 직접 하겠다면서, Table 정의서를 작성해서 줬는 데, 그 분만의 Naming Rule때문에 개발에 애먹었다. 예를 들면 Table명은 tblMember 로 하고 –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 Field명은 member_Name, member_Age, member_Gender 이런식이었다. 성격상 필드구조가 유사한 Table이 많았는 데 – 가끔은 테이블명만 다르고 구조가 아주 똑 같은 것도 있었다 – 이렇게 필드명을 만들어 놓으니까 SQL을 재활용을 하지 못하고 계속 조금씩 수정해야 했다. COBOL프로그램만 하던 분이었던 거 같은데 정말 프로젝트 수행을 가로막는 그런 분이었다.

주말이면 NetZ를 조금씩 업그레이드 했다. 그래도 예전만큼 손댈 시간을 갖질 못했었다. 새 환경과 투입된 프로젝트가 주는 스트레스에 주말이면 쓰러져 도저히 움직이질 못했다.

2월초에 본사에 들어가서 우리가 실제로 쓸 운영서버에 셋팅을 하러갔다. 서버팀 대리를 만나서 얘기를 좀 하고서 서버실에 갔는 데, DBA같아 보이는 친구가 앉아서 우리 프로젝트가 개판이니 뭐니 하면서 씹고 있었다. 나랑 같이 갔던 대리가 눈치를 주는 데도 이 DBA친구는 DB를 개판으로 설계를 했니 뭐니 하면서, Foreign Key도 안 잡았다고 뒷다마를 까고 있었다. 사실 DB스키마 설계를 PM이 한 탓에 내 눈에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이 우리 시스템을 씹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욱 하는 마음에

"DB 전문가이신가봐요?"

"예…… 그런데요?"

"예…… 그럼 왜 우리가 Table 만들면서 FK 안 잡았는지도 잘 아시겠네요?"

"……"

"어디서 책 몇 줄 읽고 DBA라고 까부는 가본데 니가 실무를 뭘 안다고 남의 시스템에 씹니? 니가 하면 더 잘할 거 같니?"

남의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해선 안된다. 특히 나 같은 놈 앞에서 깝쭉거리다간 작살이다.

훌륭한 아키텍처는 훌륭한 요구사항에 의해서 나온다. 요구사항이 거지 같은 경우에는 아키텍처가 거지꼴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엔터프라이즈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스템을 개발해 놓고 한참을 유지보수 하다 보면 프로그램 코드는 이미 퉁퉁 불은 라면발이 되고 처음 생각했던 아키텍처는 희미한 잔상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시스템을 나중에 누군가 와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시스템을 개판으로 짰니 뭐니 해선 안 된다. 개판이 되기까지에는 다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즈음 본부장이 PM을 빼고 프로젝트 팀원들을 모두 소집했다. 주로 PM의 업무수행이 어떠냐를 물었는 데 한결 같은 얘기.

"PM이랑 일 못하겠어요. PM 바꿔주세요"

본부장이 1주일쯤 있다가 다시 프로젝트 팀원들을 소집했다.

"PM을 어디 다른 팀에 보내려고 했는 데 받아주는 팀이 없어. 당분간은 PM을 너희가 데리고 있어라. 그리고 PL이 업무를 대행해라."

그 날 이후 PM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ㅋㅋ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또 다른 사건도 있었는 데, 오픈을 겨우 2주일 남겨둔 상태에서 고객사 사장님이

"화면 디자인이 너무 칙칙한 거 같지 않아?"

이 한마디에 디자인 개편작업이 있었다. 이틀인가 사흘 만에 디자인 시안이 나오고 하루만에 결정을 보고 디자인 리뉴얼 작업을 사나흘인가 진행하고 있는 데 개발실이 발칵 뒤집혀 졌다.

고객사에 계신 분 중의 한 분이 정보의 바다에서 배영, 접영, 잠영을 하시다가 우연히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사이트랑 정말 똑 같은 사이트를 찾은 거였다. 정말 우찌 이렇게 똑같니? 디자인 날짜가 너무 촉박하다 보니 디자인 회사의 디자이너가 남의 사이트를 통으로 복사한 것이었다. 스피드 추구의 종말이자 재활용의 궁극이었다.

학교 후배에게서 회사에 자리가 있는 데 오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회사 규모도 지금의 회사보다 컸고, 분위기도 이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았다. 후배네 회사가 선릉에 있어서 점심 먹고 잠시 가서 팀장님 인사도 하고, 퇴사를 하신다는 분과도 인사를 했다. 무슨 벤처회사로 옮기신다고 했는 데 그 바람에 자리가 났던 것이었다. 부산에 있을 땐 회사를 옮기려고 기차를 탔는 데, 서울에선 전철을 타는 구나. 이거 정말 편한데 ㅎㅎ

다음 날, 후배에게서 "팀장님이 회사 옮기래요, 근데 공채로 오는 거라 면접을 따로 봐야 한대요"라고 연락이 왔다. 3개월도 안 되었는 데 회사를 옮기려니 좀 그렇긴 했지만 팀장한테 "회사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간단히 말했다. 회사 들어 올 때도 후딱 처리해 주더니 나가는 것도 빨리 처리해 주었다. 며칠 후, 점심 먹고 1시경에 본부장이랑 면담을 하는 데 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에 어찌나 졸립던지, 조곤조곤 얘기하는 본부장 얘기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ㅎㅎ, 정말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

3월초에 본사로 가서 서류정리를 마무리하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며 우리사주를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제가 매월 말일하고 15일에 증감원에 가는 데, 증감원에 가서 증서를 받아와야 해요. 2월말에 갔다 와서 그런데, 15일에 드리면 안되나요?"

"예 그래 주세요"

아…… 정말 큰 실수였다. ㅎㅎ. 미리 말해서 퇴사하는 날 받았어야 됐는데. 우리사주를 샀을 때 13,000원이었는 는 퇴사하는 날 43,000원이었다. 그러니까 3개월 일하는 동안 3천을 번 셈이 되었다. 아싸 ㅎㅎ. 근데 퇴사한 다음 날부터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했는 데 막상 주식증서를 받았을 때는 43,000원짜리가 18,000원이 되었다. 이때라도 팔았어야 했는 데 그 놈의 43,000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1년 정도 있다가 4,000원이 되었을 때 팔았다. 젠장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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