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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Z 이야기

NetZ 이야기 - 1. 1999년 7월

by 글쓰는 프로그래머 2019. 2. 19.



NetZ는 98년부터 2003년까지 개발했던 작은 프로그램이다.
이 이야기는 NetZ를 개발하면서 그리고 개발한 후에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ㅎㅎ 그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없이 담담히 나를 회상할 수 있을 때가 되어, 그 때에 있었던 일들을 어디엔가 남기고 싶었다.

지금은 비록 프로그램 개발보단 무슨 무슨 계획서를 작성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내게도 프로그래머로 한 칼이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를 추억한다.

2011.11.07
 

1999년 7월


"MIS지원팀 이채성입니다"

"이채성씨죠?"

"예. 전데요"

"여긴 본사 경영기획팀인데요. 이채성씨가 AutoAuto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나요?"

"예."

"여권이 있나요?"

"있긴 한데요…… 무슨 일이세요?"

"사장님이 AutoAuto라는 프로그램을 보시고 흡족해 하셔서요…… 아마 조만간 포상이 있을 것 같아요"

"예"

"여하튼 조만간에 다시 연락 드리죠"

"예"

딸그락.

앗싸~ ㅎㅎ

1999년 7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서울의 황대리가 B일보에서 인터넷 설문을 하는 데 자동으로 클릭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느냐고 했다.

설문의 내용인 즉,

"제일은행 등 채권단이 A그룹에 4조원 규모의 자금을 새로 지원, 자금난을 덜어주기로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었다. B일보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찬성 54%, 반대 46%. 소위 그룹사의 높으신 부장님, 이사님들이 하루 종일 이 설문에 클릭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를 위해서 하루 이틀 뚝딱뚝딱 해서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AUTOAUTO" 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켜 두기만 하면 끊임없이 B일보의 설문에 찬성표를 던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에야 관련된 라이브러리가 풍부하고 관련된 기술이 대중화 되어 있지만 당시로는 그다지 대중적이었던 기술은 아니었다. Socket으로 해당 웹사이트의 웹서버에 끊임없이 데이터를 보내고 그 결과를 리턴 받아서 표시해주는 것이다.

물론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이었지만 B신문사가 그룹사 유동성 위기에 한 몫 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결국 그 유동성 위기가 내 월급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관계로 이것저것 따질 게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에 회사 게시판에 올린 날이 7월 21일. 그리고 7월24일에는 찬성 92%, 반대 8%. 가 되었다. 단 며칠동안에도 금방 전세가 역전되었다.

AutoAuto는 심각한 버그를 갖고 있었는 데 '찬성시작' 버튼을 누른 후에는 닫기가 잘 되는 거였다. 즉 한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가 없었다. 잘 죽지도 않고. 천상 컴퓨터를 껐다가 켜야 되는 버그를 갖고 있었다. 하루는 버그패치를 해달라고 게시판에 댓글이 달렸다.

그 회신으로 썼다.

"저도 중단이 되지 않는 버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버그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번 시작하면 중도에 중단해선 안 되는 일이 있지 않을런지요?"

아마 그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을 사장이 들었나 보다.

와이프랑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갔는데 이 기회에 신혼여행을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8월초에 본사 경영기획팀 박대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사 경영기획팀인데요, 이채성씨인가요?"

"예. 전데요."

DB가 깨져서 한참 고생하고 있을 시점이었는 데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앗싸. 드디어 해외 여행가는 구나 ㅋㅋ'

"혹시, NetZ라는 프로그램 개발을 하셨나요?"

"…… 예…… 제가 만들긴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예… 프로그램 크기가 얼마나 되지요?"

짜아식이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글쎄요? 왜 그러세요?"

"프로그램 분석을 위해서 그러니 소스를 보내주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 남의 프로그램의 소스를 달라니…… 당황스러웠다.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개발한 건데요…..."

"아…… 모르시나 본데, 법인에 속한 직원이 개발한 모든 소스의 저작권은 모두 법인 소유예요. 모르셨나 보네요. 소스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예……"

딸그락.

전화를 끊고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1년6개월을 만든 프로그램 소스를 순식간에 회사에 바쳐야 한단 말이야?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내참…… 황당한 마음에 담배만 줄줄이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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